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민 케인 (문단 편집) === 과대평가론 === [[장폴 사르트르]]는 개봉 당시에 이 영화를 혹평했는데, 그의 [[실존주의]] 사상과 맞지 않아 혹평한 것으로 사료된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운명은 결정되지 않았으며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라고 설파하는 철학이다. 상류 문화와 사회의 세태에 의해 파괴되는 인간을 다룬 시민 케인과는 정반대이니 혹평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과대평가 됐다는 비판을 하는데, 영화 팬들 뿐만 아니라 평단이나 영화인들 내에서도 동일한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좋은 영화이지만 역사상 최고의 작품은 아니라는 것. 오슨 웰스 전문 연구자들도 최근에는 〈시민 케인〉보다는, 〈악의 손길〉이나 〈위대한 엠버슨가〉를 웰스 최고의 명작으로 치는 경향이 있다. 여러 비판과 논쟁을 겪으면서, 드디어 2012년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투표[* 사이트 앤 사운드는 BFI(영국영화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잡지이다.]에서 1위 자리를 〈[[현기증(미국 영화)|현기증]]〉에게 내주고 2위로 내려왔다. 지속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전세계 투표 결과에 반영된 셈. [[http://www.bfi.org.uk/films-tv-people/sightandsoundpoll2012/critics|2012년 투표 결과]] 〈시민 케인〉에 대한 호평 중 하나로 [[1940년대]]까지 나온 [[몽타주]], [[미장센]]과 같은 영화 언어를 총망라했다는 것이 주로 거론됐지만, 이마저도 당대 영화들이 이미 사골 우려먹듯 하고 있었던 터라, 그 참신함과 혁신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감독인 오슨 웰스보다 __촬영 감독인 그렉 톨랜드의 공이 더 크다__는 지적도 있다. 그렉 톨랜드(1904~1948)는 [[존 포드]]와 같은 감독과 작업하며 촬영 기술을 익혀왔고, 〈시민 케인〉에서 촬영술의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영화 촬영 당시에 초보감독이었던 오슨 웰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이 그렉 톨랜드이기에, 일각에선 두 사람의 '공동 연출'이라 보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오슨 웰스는 톨랜드의 가르침에 보답하고자, 영화 크레딧에 그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만큼 크게 박아넣었다.] 사실 그렉 톨랜드가 오슨 웰스에게 먼저 찾아와서 같이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 했는데 당시 톨랜드에게 이유를 물으니 웰즈가 영화 제작에 대해 아무것 도 몰라서였다고 한다. 톨랜드는 거장답게 이제 갓 영화계에 뛰어든 젊은 예술가 웰스의 재능과 가능성을 믿으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웰즈도 십대시절부터 연극무대에서 다년간 다져진 경험으로 무대 조명에 대한 지식이 있긴 했어도 막상 영화제작은 처음인지라 만 하루 반 동안 톨랜드에게 속성 기본 촬영 레슨을 받고 매일같이 16-18시간 이상, 새벽 3-4시까지 열정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시민케인에서 선보인 그 때까지의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영상 아이디어들도 정식 영화학교같은 교육기관에서 이론 수업을 받거나 할리우드 스튜디오등에서 일하며 일반적으로 통용되어오던 관행을 웰즈가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웰즈는 영화를 직접 미친 듯이 보면서 영화를 배운, 국내의 박찬욱이나 봉준호처럼 미국의 첫번째 영화광 세대 감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작업 비하인드 스토리는 영국 감독 [[리들리 스콧]]이 제작하고 [[리에브 슈라이버]], [[존 말코비치]]등이 출연한 1999년 HBO TV 영화, 《RKO 281》[[https://www.rottentomatoes.com/m/rko_281|#]]에 잘 묘사되어 있다. 웰즈가 허스트 캐슬에 방문한 적이 없다는 것을 빼면 비교적 고증이 잘 되어있는 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한편, 〈시민 케인〉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오슨 웰스가 아닌 __각본가 허먼 J. 맨키비츠__를 거론하는 의견도 있는데, 일례로 비평가 폴린 카엘[* ''Pauline Kael'' / 미국의 비평가. [[쿠엔틴 타란티노]]도 존경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은 〈시민 케인〉과 더불어 오슨 웰스를 칭송하는 세력들을 공격하며, [[1971년]]에 〈시민 케인〉의 진정한 창작자는 오슨 웰스가 아닌, 각본가 허먼 J. 맨키비츠라는 내용의 두꺼운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2020년에는 〈[[맹크]]〉라는 이름으로 맨키비치를 다룬 전기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작품 중에 치명적인 오류가 존재하는데, 대체 케인이 죽을 때 '[[로즈버드]]'라는 말을 한 것이 어찌 알려졌냐는 것이다. 위의 설명에도 있지만 케인은 홀로 죽었는데 케인이 죽을때 말한 로즈버드라는 단어를 작 중의 모두가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촬영당시 스태프 중 누군가가 이 사실을 깨닫고 웰스에게 지적했더니 웰스가 잠시 고민하다가 "이 사실은 자네만 알고있게" 라고 입막음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존재한다. 물론 기록적인 명작에 이런 오점이 있었다는 식의 유머로만 넘어가자. 실제로는 영화 후반, 케인의 말년을 보필한 집사가 본인이 그의 유언을 듣고 임종을 지켰노라고 증언한다. 위에 링크된 영상에서도 케인이 [[밥상 뒤집기|값나가는 물건을 때려부수며 분노를 표하자]] 집사 뒤로 고용인들이 몰려와서 구경하는 장면이 명백히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